아이비리그 인맥 지도 - 프린스턴대학교…정운찬·이준구 교수 등 학계 진출 많아 성공적인 삶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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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대학랭킹 7년연속 1위 명문…이승만 초대대통령 대학원 다녀......
이승만 초대대통령이 나온 프린스턴 대학교는 미 대학랭킹에서
7년 연속 1위를 차지한 명문으로 자리잡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정운찬 서울대교수, 구자홍 LS회장, 이준구 서울대교수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정동수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인베스트코리아 단장, 김태연 한나라당 국책자문위원, 김경환 서강대 교수, 성대동 동아대 화학과 교수(21세기 최고 2000 지성인),
한배호 유한양행 이사장.
프린스턴대는 1746년에 설립돼 미국에서 여덟 번째로 역사가 오래됐다. 그간 WASP(백인 청교도계)의 본거지로 알려져 왔으며, 여학생이 타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어 남성 위주 대학으로 평가돼 왔다. 명문 사립대학의 특성에 따라 전체 학생수가 6000명에 불과하지만 캠퍼스 면적은 2600에이커나 돼 미국 대학 중 학생 1인당 면적이 가장 크다.
프린스턴대는 주변에 마땅한 거주지가 없어 거의 모든 학생이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다. 예일대와 함께 ‘Residential System(기숙학교제)’ 대학의 전형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대학은 워낙 입학 기준이 까다로워 외국 유학생이 꺼리는 학교 중 하나며 한국 유학생도 30~40명 내외에 불과하다.
이 대학은 아이비리그 대학 중에서도 학부 학생들의 수업과정을 특히 강조한다. 또 하버드나 예일에 비해 대학원 학생수가 훨씬 적다. 교수 대 학생 비율이 1대 7로 학생들이 교수들의 개인적인 도움을 받을 기회가 많다. 이 외에도 프린스턴에서는 전통적으로 교수가 학생 10여 명과 모여 학생들이 교수와 1대 1로 의사를 발표하고 토론하는 소위 퍼셉토리얼스(Perceptorials)라는 시간을 제공하고 있다.
이런 시간을 통해 교수와 학생들이 강의시간에는 가질 수 없는 긴밀한 관계를 이루게 된다. 학부 학생들은 3학년이 되면 교수의 개인적인 지도 아래 연구를 하고 학술논문을 쓸 기회를 갖게 된다. 4학년에는 거의 모두가 필수적으로 졸업논문을 쓰게 되는데 물론 교수의 개인적인 지도를 다시 받게 된다. 남학생만 입학시켜 오던 프린스턴 칼리지가 여학생들을 학사 과정에 받기 시작한 것은 1969년부터였다.
프린스턴대는 뉴욕시와 필라델피아시의 중간쯤 되는 뉴저지주의 살기 좋은 교외촌 프린스턴에 위치하고 있다. 이 타운은 작지만 비교적 부촌이며 조용하고 평화스러운 인상을 풍기고 있다. 여름철에는 푸른 나무들이 특히 많이 우거져 있어 유학생들은 학교 생활환경에 대해 대만족을 표시하고 있다.
프린스턴대는 대부분 고딕식의 건물들로 아름다운 교정을 이루고 있고 그중에서도 낫소빌딩(Nassau Hall)은 1783년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된 적도 있는 유서 깊은 건물이다. 이 대학 또 하나의 특징은 다른 아이비리그 대학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소위 '아너 시스템(Honor System)'이라는 제도다. 1893년부터 학생들이 지켜오는 전통이다. 이 '아너 시스템'에 따라 시험 중에도 감독이 없다. 교수는 시험지를 나눠주고 질문이 없으면 교실을 떠났다가 시간이 되면 다시 와서 답안지를 거둬갈 뿐이다.
3학년에 올라가면서 가입할 수 있는 '이팅 클럽(Eating Club)'도 프린스턴의 자랑거리다. 75%의 3 4학년들이 11개의 기숙사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이팅 클럽에 가입하고 있으며 이곳에서는 각 나라 문화와 고유음식을 맛보는 동시에 전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11개 클럽 중 6개에는 3 4학년이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으나 5개는 성적 혹은 경력별로 우수한 학생들만 가입할 수 있다.
이 대학에서는 수학과 물리학과 철학과 등이 특히 잘 알려져 있다. 역사와 정치학도 유명하고 특히 우드로 윌슨 스쿨(Woodrow Wilson School of Public and International Affairs)은 정치가나 외교관의 꿈을 가진 학생들에게는 이상적인 학교다.
학생수가 적은 문리과대학의 성격을 갖고 있지만 공과 분야도 있고 그중에서도 항공과 기계과 엔지니어링 물리학 등은 세계적으로 강세를 보이는 학과다. 또 건축대학도 있고 최근에는 분자생물학(Morecular Biology) 연구실을 2900만 달러나 들여 새로 건립했다.
이 학교는 국립과학재단에서 수퍼컴퓨터 연구대학으로 지정한 5개의 대학 중 하나로 우수한 수퍼컴퓨터 시설을 갖추고 있다. 이 대학에는 법대 의대 또는 경영대학원 등의 전문학교가 없다. 프린스턴에 입학하는 학생들의 질은 하버드나 예일대 학생들과 비슷하고 또 입학 경쟁률도 대등하다. 이 대학의 교수진 역시 어느 대학에 못지않게 우수한 학자들로 구성돼 있다.
프린스턴대는 2006년 '유에스뉴스 앤드 월드리포트' 선정 미국 최고 대학 자리를 차지했다. 그간 공동 수상을 포함해 7년 연속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이 잡지는 지난 3년 동안 하버드대와 공동 1위였던 프린스턴대를 단독 1위로 올리고 하버드대와 예일대를 2 3위로 발표했다. 잡지는 입학생 평균 성적과 학생 대비 교수 비율 재정 상태 동문 현황 등을 종합 평가해 매년 대학 순위를 발표하고 있는데 '해당 대학에 대한 다른 대학들의 평가' 항목이 25%로 순위 선정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프린스턴이 미국 최고의 대학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미국 부모들은 자녀가 프린스턴대에 들어가는 것을 가장 열망한다. 프린스턴대는 미국에서도 학비가 가장 비싼 대학 가운데 하나다.
1년치 등록금만 3만1450달러다. 생활비까지 합치면 최소 4만3425달러가 필요하다. 미국 가정의 소득 중간치가 4만5000달러 정도라는 점을 감안할 때 자녀를 프린스턴대에 보내는 것은 경제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프린스턴대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모교로 한국인들에게는 익숙한 학교다. 이 박사는 세계적 명문인 하버드대와 프린스턴대 대학원에서 2년 반 만에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대학에서 2년여 기간에 인문, 사회과학 분야의 박사학위를 딴 사람은 한국인으로서 이 박사가 최초일 뿐 아니라 미국인으로서도 전무후무했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에 걸쳐 일본과 중국에서 우리보다 먼저 수많은 유학생을 구미에 파견했지만 그들 중에 이 박사의 학력에 필적할 인물은 배출되지 않았다.
프린스턴대 대학원 측은 이승만에게 2년 이내에 박사과정을 끝낼 수 있을 것이라는 ‘보장’과 함께 프린스턴 신학교 기숙사에서 무료로 생활할 수 있는 혜택까지 베풀면서 배려했다.
만학도(만33~35세) 이승만이 뉴저지주 프린스턴의 아름다운 캠퍼스에서 공부에 열중했던 기간은 1938년 9월부터 1940년 6월 14일까지 2년에 불과했다. 이때 그는 이 대학의 총장 윌슨(Woodrow Wilson), 대학원장 웨스트, 그리고 신학교 학장 어드먼(Charles R. Erdman) 등의 총애를 받으면서 비교적 즐거운 학구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는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종교 과목을 택해 청강하면서 주로 대학원에서 국제법을 전공하며 미국사와 철학사 과목을 부전공으로 택했다. 마지막 학기에 엘리엇(Edward G. Elliot) 교수의 지도 아래 ‘미국의 영향을 받은 국제법상의 중립’이라는 제목의 박사학위 논문을 집필했다. 그의 논문은 심사위원 3명의 교수로부터 ‘우수’ 평점을 받아 졸업 후 1912년 1월에 프린스턴대 출판부에서 논문집이 출간되기도 했다.
한국의 프린스턴대 출신들은 주로 대학 강단에 서 있는 경우가 많다. 아카데믹한 학교 분위기와 전통을 반영하는 결과다. 학부 수업을 강조하고 학문의 순수성을 지향하는 학풍과도 관련이 있다. 학계 쪽의 쟁쟁한 인물이 많다.
정운찬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강현삼 서울대 명예교수, 김건 고려대 화학과 교수, 김경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김동언 포항공대 물리학과 교수, 박창범 고등과학원 교수 등 기초과학과 사회과학 분야에서 수많은 인재를 배출했다. 정운찬 교수는 1972년부터 76년까지 프린스턴에서 수학하며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준구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 68학번이다. 군 제대 후 한 외국계 은행에 들어가 잠깐 일하다가, 1976년 8월 프린스턴으로 유학을 떠났다. 준비가 부족했던 탓에 공부를 하는 데 어려움은 많았지만, 노력 하나로 버틴다는 일념으로 학위과정을 마쳤다는 것이 이 교수의 회고다.
교수로서의 첫 직장은 뉴욕주립대 알바니 캠퍼스. 1980년 9월부터 1984년 2월까지 그곳에서 가르쳤다. 서울대에서는 경제학원론, 미시경제이론, 재정학 등을 가르치고 있다.
기업인 중에는 구자홍 LS 회장이 있다. 구 회장은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프린스턴대에서 학부 생활을 했다. 전공은 경제학. 구태회 명예회장의 장남인 그는 산업용 소재 분야에서 세계 톱으로 성장하겠다는 비전을 갖고 있다. 제조 회사의 미래는 R&D 역량에 달려 있다는 것이 그의 경영관이다. “창의적 발상으로 부가가치가 높은 분야에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것이 그의 최근 화두다.
한글과컴퓨터 사장을 지낸 벤처사업가 류한웅씨는 프린스턴대에서 역사학을 전공했다. 유한양행 한배호 이사장, 이희규 전 삼성전자 대표이사, 장두원 제일모직 상무 등이 프린스턴대 출신이다. 장 상무는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프린스턴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정동수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인베스트코리아 단장, 배혜경 아하사이언스 대표이사, 구형건 피스트글로벌 대표이사 사장, 한동우 전 한솔종합금융 사장 등도 프린스턴대가 배출한 한국 기업인들이다.
과학영재교육 사이트인 아하사이언스(www.ahascience.co.kr)의 배혜경 대표는 유회준 한국과학기술원 교수 겸 부사장과 부부 사이다. 충남대 화학과 교수로 재직하던 배 대표는 우리나라의 빈약한 과학 교육 현실에 속이 터져 창업을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인 중에는 손봉숙 중도통합민주당 의원, 김태연 한나라당 국책자문위원이 있다. 손 의원은 이화여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하와이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프린스턴대에서는 약 2년간 전공인 정치학을 연구했다. 김태연 위원은 노동부 차관과 한국관광공사 사장을 지냈고 프린스턴대 대학원에서는 경제학을 공부했다.
손봉숙 의원의 차녀인 안정현(31)씨 역시 아이비리그 출신이다. 코넬대에서 언어학 석사학위를 받은 안씨는 미국 하와이 태생으로 원어민 수준인 영어 실력과 러시아어, 프랑스어, 체코어 등 4개 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과정에서 IOC 선수분과 위원 전이경씨와 함께 프레젠테이션을 맡기도 했다.
잊을 수 없는 나의 모교 “하루 16시간 어떻게 공부했는지…”
박종규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나는 가끔 내 인생에 불가사의한 일들이 몇 번 일어났던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한다. 그중 하나가 나처럼 아둔한 사람이 어떻게 프린스턴 경제학과 대학원에 입학했으며 어떻게 프린스턴에서 무사히 박사학위를 받았나 하는 것이다. 본인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으니 감사의 마음을 가질 뿐이다.
나는 아직 이렇다 할 업적을 남긴 사람은 아니어서, 유학시절을 회상하는 글을 쓸 자격이 충분한지도 잘 모르겠다. 프린스턴 동문 가운데는 나보다 연배도 높고, 이름이 높으신 분들이 많이 계신데 왜 하필 내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지, 이것 또한 나로서는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프린스턴 유학시절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추억은 하루 공부시간으로 16시간을 채우는지, 시계를 봐가며 스스로를 채찍질하던 기억이다. 아무런 잡념 없이 학업에만 몰두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학비와 생활비를 장학금으로 받아 돈 걱정이 필요 없던 것 말고도, 나의 지도교수이던 피에르 페론, 짐 파월, 로빈 럼즈데인, 그레고리 차오를 비롯한 세계 최고의 교수들로부터 끊임없는 자극과 격려를 받았던 덕분이었다. 그분들에게 배웠던 학과 내용이야 지금은 많이 잊어버렸지만 학문에 대한 열정과 자신에게 엄격해야 하는 학자로서의 훈련자세만큼은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다.
내가 공부에 전념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뉴저지의 넓디넓은 숲 속에 파묻혀 조용하기 이를 데 없던 캠퍼스 분위기였다. 시내라고 해봤자 5분만 걸으면 횡단이 가능한 작은 도시인 데다 이른 아침 산책길에 사슴 가족을 만날 만큼 목가적인 분위기였다. 특히 대학원생 기숙사는 골프장을 끼고 있어 창밖의 경치가 말할 수 없이 아름답고 조용했다. 그러나 기숙사 방 안에서의 생활은 숙제와 시험 준비, 논문 읽기에 바빠 아름다운 경치를 즐길 마음의 여유는 거의 없었다.
박사 과정 1학년 때, 앨런 블라인더 선생의 거시경제학 시간에는 한 학기 동안 읽어야 할 논문이 모두 1500쪽에 달했는데, 이걸 다 읽어야 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학기말 시험 전날까지 동기생들끼리 서로 걱정했던 생각이 난다. 지난달에는 JP모건에서 아시아 헤드로 일하고 있는 데이비드 페르난데스를 졸업 후 14년 만에 처음 만났다.
그의 기억으로는 25명 동기생 가운데 그 논문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은 사람은 3명뿐이었다는 것이다. 프린스턴은 내가 다니던 때만 해도 학부생이 한 학년에 800명 정도인 조그마한 규모였는데 지금은 대폭 늘어나 한 학년에 1200명은 된다고 한다. 전통적으로 기초학문을 고집하는 편이라 경영대, 법대, 의대도 없다. 그렇다 보니 국내에서 활동 중인 한국인 동문 숫자도 100명 남짓밖에 안 된다. 게다가 대부분이 교수들이다. 동창회 호주머니가 늘 가벼운 이유다.
첫 번째 한국인 졸업생은 1910년 우드로 윌슨 총장으로부터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은 이승만 대통령이었다. 사제지간이던 두 분 모두 훗날 자기 나라 대통령이 되었다. 첫 번째 동창회는 한국전쟁 휴전 직후인 1953년 겨울 무렵이라고 전해오고 있다. 1954년 겨울, 이 대통령의 초대를 받아 군인 신분으로 동창회에 참석했던 미국 동문들의 증언으로는 그것이 처음 모임은 아니라고 들었다는 것이다.
프린스턴 대학의 본부는 올드 나소 홀(Old Nassau Hall)이라는 유서 깊은 건물인데 그 로비의 벽면은 온통 검은 대리석으로 둘러쳐져 있다. 거기에는 제1, 2차 세계대전, 월남전, 그리고 한국전에 참전했다가 목숨을 잃은 졸업생의 이름이 사방 가득히 하얀 글씨로 새겨져 있다.
프린스턴에서 보낸 4년은 내 인생의 스물아홉에서 서른셋까지의 기간이기도 하다. 지금 다시 가 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 마지막으로 프린스턴에 가 본 것은 졸업 다음해인 1994년이었다. 캠퍼스 구석구석을 다 걸어 다녔지만 아내와 2년을 살던 로렌스 아파트까지는 차마 발걸음이 닿지 않았다. 거기서 지낸 행복했던 시절이 벌써 지나가 버렸음을 눈으로 보게 될까 두려웠던 모양이다. 지금 다시 가본다 해도 프린스턴의 모습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을 테지만 지나가 버린 나의 젊은 시절은 되찾을 수 없을 것이다.
프린스턴대학교
구분: 사립대
개교연도: 1746년
소재지: 미국 뉴저지주 프린스턴
교수 1인당 학생수: 7명
장서: 약 500만 권
학교 특징: 2006년 ‘유에스뉴스 앤드 월드리포트’ 선정 미국 최고 대학 자리를 차지했다. 프린스턴대는 공동 수상을 포함해 7년 연속 1위를 고수하고 있다. 그동안 백인 청교도계의 본거지로 알려져 왔다. 학부 학생들의 수업 과정을 특히 강조하고 학생수가 적은 편이다.
한국인 동문: 학계 쪽에 쟁쟁한 인물이 많다. 정운찬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강현삼 서울대 명예교수, 김건 고려대 화학과 교수, 김경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김동언 포항공대 물리학과 교수, 박창범 고등과학원 교수 등 기초과학과 사회과학 분야에 인재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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